서정시 (기억에 의지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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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7. 밤 9:59. 생활관에서.
하늘만 보면 자꾸만
죽어 버린 이름들이 가을단풍처럼 일어나
별이 지나가는 길로 갈대밭처럼 눕는다.
여름에도 그러하였지만,
가을 오는 동안 내내
나는 네 숨결 가득한 그 이름 석자를
결코 하늘로 날려버리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서
동쪽 하늘로 가 버리는 달빛을 보며
사뭇 차가워진 호흡에
네 이름 석자를 다 부르지 못하고선 입을 다문다.
사랑하리라 꼬옥 마음 먹으며 쥐었던 주먹은
이제는 풀어줘야겠다.
손가락 사이로 스미어 사라져 버린 네 이름을
'사랑'이라 대신 부르며 모래성처럼 쌓으려 한들
일어나 북쪽으로 꿈틀대며 달리는 산을 좇기조차 숨가쁘다.
별은 하늘에서 떠서 하늘로 진다.
그러하듯, 소원을 가득 담은 별들은
네 모습을 간직하기에 벅찬 듯
추억에 고개를 숙인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인가 보다.
우리에게 죽도록 따라다니는 숙명같은 시간,
사랑과 이별과 추억을 가슴에 묻고서
죽은 듯이 자야할 것인가 보다.
꿈속으로 지는 네 기억을 좇아
나는 이제 억만 시간을 자야할 것인가 보다.
가을이기에 나는 단풍처럼 곱게 자야할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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