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예전에 농사짓다 공단 조성하느라고 팔려간 산 자락의 밭뙈기가
절반쯤이나 자투리로 남아있어
내 땅인냥 전과 같이 밭농사를 짓는다 족히 백여평은 되리라
수년 전에 심은 감나무 스무여 그루
밭 언덕엔 가죽나무 드릅나무 살구나무 두서너 그루씩
밭 가운데는 이랑 넓게 만들어 부추 고추 상치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채소를 가꾼다


가꾸는 사람은 당연히 내 어머님이시다
지난해 칠순 넘긴 정정하신 할머님이시지

밭 아래 마을에서 세세 누년을 이어 살다 십여년 전에
채 십리가 못되는 곳으로 이사를 갔었다
마을 사람 모두다 이를테면 집단이주지



어머님께선 밭농사 지으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
다 크버린 작은 손자가 어릴적에 탓던 보조바퀴 달린 낮은 자전거를
밭으로 가려면 산 밑으로 난 넓은 도로를 다녀야 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인근지역에 공장이 들어서지 않아 위험도가 낮았으나
이젠 공장들이 들어서니 행인도 늘어나고
교통량도 많아져 위험도가 뒤따른다



아들 딸들은 늘 불안 해 하여도
할머니는 아랑곳없이 매일 출퇴근하듯 하신다.
밭일이 바쁘시면 며느리 몰래 도시락까지 싸들고 가신다
작은 아들 식당 개업한 후론 더 바쁘셨다
식당에 채소 공급하느라고 그래봐야 채소 값도 받지 못하면서
작은 며느리 곱 잖은 눈총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할머니께 사단이 생겼다
지난 주 어느날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가 사라지고 말았으니
리어카 끌고 다니시며 고물 줍는 사람이 가져간 것으로 결론 내리고
못내 아쉬워하셨다 벌써 두 번째 잃어버렸으니 오죽하시겠나 싶다
먼저 번 자전거 잃어버리시고는 거금 오만원으로
자전거를 손수 마련하셨는데
또 장만하자니 아까운 생각이 드셨는지 몇 일째 아무말씀 없으셨다



어끄제 농약상에 들러 벌레 죽일 농약 사오시다가
길가에 버려진 어린이용 자전거를 주어오셨다
표면이 조금 벗겨지고 페달이 없는것 말고는 산지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멀쩡한 새것으로 보였다
할머니는 자전거점으로 가시어 보조바퀴 달고
부서진 페달 갈아 끼우고 브레이크 살피고
작은 바구니까지 달아오셨다



자전거 찬찬히 살핀 큰며느리가 발칵한다
주인 찾아줄 수도 있는데 고쳐 집으로 가져왔다고
손자까지 제 어미처럼 할머니를 다그친다
자전거 어딘가에 아파트 이름과 동호수가 적혀있었다
할머니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한두 곳도 아니고
우리 집과는 멀기도 할 뿐더러
고장나고 부서진 채로 길가에 버려진 것인데 뭐 어떨까 싶어하신다
그래도 자전거 도둑은 되고싶지 않으시고
자전거 두 대나 잃어버린 보상심리도 생겨났을 테고



결론을 내렸다
소유자의 흔적이 표시되어있어 찾아줄 수 있는 물건을 조금 부서지고 버려져있다는 것만으로
쉽사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도둑과 다름없다라고
그러면서
다음부턴 자전거를 밭이랑 옆에 두시고 일하시든지 열쇠를 채우시라고
길가에 두면 아무나 가져가라는 뜻과도 같아
또 잃어버린다고
부주의하여 물건 잃어버리면 죄는 되지 않으나 자기책임은 면치 못한다라고

내 어머님과
우리 가족 모두는 자전거 도둑이 되었다
아직 그 자전거 주인을 찾아주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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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수필] u**g**님의 글, 작성일 : 2003-04-30 09:08 조회수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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