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서화 2 - 일상을 정리하며...
주소복사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나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취한 술병들이 쓰러져 자고
방안의 고독만큼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견딜만한 비웃음이다.
누군가 엮어온 실오라기 속으로
기쁨과 슬픔, 사랑에 잠겨
정신없이 성장해온
우리의 스무살, 각자의 이야기였다.
나만의 편지를, 시를, 일기를
철없이 태워없애면서
홀로 남아있기를 바라던
바보같은 순수함이였나보다
(2)
방안 가득 푸른내가 쏟아진다.
금빛 바람이 쓸고 떠난 자리에
황혼 들녘의 파도가 밀려와
가슴은 한 폭의 수채화를 남긴다.
만남은 겪어갈수록
가슴은 사랑으로 푸르러가고
이별을 겪어갈수록
푸르름은 그리움으로 붉게 익어가는데,
호올로 바람소리가 된 고우여,
논길을 따라 뽑아들곤 삘기소리
삐리삐리... 외쳐 보내면
그 계절을 떠나버린 사랑이여...
(3)
원두막에 딸랑딸랑
도둑발 딛고 찾아온 바람소리에
잠을 깨면, 그렇게
모든 것을 그리워했었다.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울면
다음엔, 또 다음 해엔 같이 살 수 있다고,
들녘을 지나는 이름없는 푸름 사이로
저 멀리 새벽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명을 기다리다 지쳐 잠들면
그늘 깊은 사연이 얽혀가고,
어느 덧 먼 이야기가 되어
잊고지내고 마는 계절이야기였다.
()
어렴풋한 멜로디를 느끼며
구석진 골방의 어둠 속에서
그리운 사람의 이름으로
머리를 떨구며 무너져 내린다.
창 밖 별 하나에
그리운 사랑하나씩 담아두면
의미도 모르고 떠나간
철없던 시절의 그리움은
견디기 힘든 아픔으로 다가온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데,
이별을 알고부터는
모든 것이 항상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5)
기도하는 것은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이였다.
담당하게 죽음을 경험한 후로
그것은 평생을 두고 떠올리는 흔들림이였다.
무덤가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
사랑하는 삶은 언제나 눈물로 꼴을 주지만,
그 아픔을 싣고
핏빛 흐르는 기도는 너무 슬프지 않았는가.
사랑이란 좋은 단어가 있는데,
언제나 멈짓, 멈짓... 수줍어 하는 건
이별이란 결과가 남기 때문이라고,
사랑은 언제나 기다림이 남는 걸 배웠다.
()
눈빛이 하이얗게 쏟아지는 햇살은
너무 쉽게 별한 열두살 때의 가슴이였다.
마냥 좋아 파릇한 맨발로 술래를 피해
두꺼비 집만한 어둠 속으로 피하면,
꾸벅꾸벅 꿈 속으로
그리움의 깊이만큼 예감이 있어
멀리서 다가오는 소녀의
발자국 소리.
부끄럼없는 사랑으로
너와 나의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면
참고 참았던 순수함에
외로움이 하나 새겨져간다.
(7)
언젠가부터 그리운 날들을 위해
가슴을 열어두며 지내왔지만,
오랜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그 기대가 너무 어리석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기대 속에서
기다림은 지금도 행복하지만,
만남과 믿음 사이에서
철없이 겪었던 좌절은 무엇이였는지.
홀로 수많음을 겪고 돌아온 여행에서
많은 이들의 아픔의 술잔을 마시면,
이제 막 시작되는 가슴이
아픔으로 채워져 넘치는 듯한
답답함은 무엇인가.
()
새로운 세계로 다가갈수록
하나씩 깎여가는 빈 가슴.
무언가를 채워가기 위하여
오늘도 끝없이 삶에 애걸하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비웃으며 바라보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가슴에 담아둘 수 없기에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끝없는 파도가 밀려오고, 사라진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열심히 사랑하고 있을텐데...
난 조금한 마음에
빈 가슴을 움켜쥐곤 울고 있었다.
(9)
어른이라는 것은
너무 많은 가슴을 버리고도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겨우 그 공허함만을 채우는 듯이 보였다.
아련히 동경해왔던 그 모습이
스무살, 비웃음 소리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멋진 연애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두던
어린 날, 순수함이 사라져버린
쓸쓸한 비웃음 소리들,
오늘도 견딜 수 없는 무력감이다.
텅빈 가슴을 메워줄
만남과 이별을 남겨야겠다.
홀연히 변해버린 세상 한가운데서
이제 나의 모든 것을 위한
내일을 준비하고 싶다.
0개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