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XIII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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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 밤 9:35. 생활관에서.
다만,
잃어버림을 가장한 잊어버림에 젖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는
새로운 사람으로 인하여 호화로워졌으며,
마음이 저리는 아픔은
웃어 주는 그사람으로 해서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느낌,
그것은 사랑을 잃어버린 증거이지요.
그러나, 메말라 따가운 입 속에
화하게 일어나는 한숨은
사랑을 잊었다는 증거입니다.
지나간 사랑을 붙잡고 있다면
지금 새로이 다가온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그때 놓아주며 떨리던 손을 위하여
차분히 누운 등에 따스한 두근거림으로 보내 주어야 합니다.
잊어버린 사랑이라면,
무책임하게 어딘가에 쓰러져 흙이 되어 가는
잔 나무가지같은 보잘 것 없는 일생의 만남이었다면,
구태여 스러진 구름 허리처럼
하늘에 기억을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대로 살아 갑니다.
갈라져 버린 가슴의 뜨거운 호흡을
제 멋대로 새기는 기억으로 키우며,
각각 조각이 되어 떠다니는 자유로운 섬처럼 그렇게 살아 갑니다.
잃어버린 적은 분명 없습니다.
그러니, 잊은 적도 없다고 여깁니다.
낯익은 사람이 지나갈 때 느끼는 흠칫 돋는 소름처럼
가을 바람이 전해 주는
도돌도돌한 전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다리는 내 사랑에게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나에게 사랑은 그사람 뿐입니다.
완성할 것이므로,
완성되고 있으므로...
사랑은 그뿐입니다.
기억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사랑이었던 모든 것은 시로 그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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