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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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의 머리에는 가득히 눈이 쌓여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먼저 보게되는 얼굴이지만
그녀의 얼굴을 볼때마다
나는 번번히 예전에 읽었던 설국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됩니다
2.
여인은 7세의 노인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찢어진 창호지같은 머리를 추스리고는 여린 짐승처럼 잠든 손주의 이불을 여며주는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가끔씩은 졸음이 어린 눈을 반쯤 뜬채 낑낑거리는 손주를 다독거리기도 했지만 보통은 그냥 그대로 서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미닫이 문을 나서서는 눈이 시린 아침공기를 마주한채 한숨을 쉬는것이었다
이미 태양은 떠오르는 희망이 아닌 지겨운 일상의 반복임을 깨닫고 있었고, 그녀의 육신 또한 그녀를 위함이 아닌 그저 살아가기위한 본능으로 익혀진 기계일 뿐임을, 그리고 그 기계가 요즘들어 심하게 삐그덕거린다는 것 또한 알고있었다.
이유도 없이 부산하기만한 반나절이 지나고 오후 시간이 잠시 나른해질즈음에 그녀는 거울을 보기도 했다. 햇살에 비춰 너무나도 사실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며 왠지 슬픈 모습으로 멍하곤 했다. 어떤날에는 사오십년은 족히 된듯한 작은 증명사진을 꺼내보기도 했는데 흑백사진속 수줍은 소녀인 자기의 모습을 마치 낯선 여인을 바라보듯 하며 괜한 미소를 지었다
밤이면 언제나처럼 그녀없이는 살지못하는 가엾은 짐승을 가슴으로 품은채 잠이 드는데, 유달리 아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꿈속에서도 항상 아기를 찾아 헤메었다. 이미 훌쩍 커버린 손주가 가슴에 안겨있는데도 그녀는 어린 아기 손주를 찾아 매일밤 꿈속을 헤메이고 헤메이고 헤메었다..
3.
어찌보면 그녀는 가을 나무와도 같습니다
빈 가지 가득히 외로움만 안은채 삐그덕거리는 가을 나무같기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먼저 보게되는 얼굴이지만
나는 내일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볼수없을까봐 매번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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