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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LV (길가에 선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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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LV (길가에 선 내 사랑)

2001..11. 퇴근길 수원 → 가리봉 전철 저녁 :5

비교적 한산한 거리에
조금씩 어둑한 구름의 흔적이 물들고,
10月의 사랑을 마무리 하는 비는,
아낌 없이 11月로 쏟아져
먼지 투성이로 덮인 보도블록을 씻어 내린다.

벽, 벽에 갇혀 밖을 내다 보는
까치같이 동그란 이 눈에는 아무래도
가을이 한참 익어 가는,
한 쪽으로 무너져 기우는 계절의 불균형을
그저 담담히 지켜 보며 내어 뱉는 신음 한 마디가
산산히 흩어져 떨어질 낙엽보다도 걱정스러운가 보다.

오가는 사람들이며, 시선,시선들이 북적이는
청명하게 짙푸른, 잔인한 가을 하늘에 지쳐
봄부터 이루어진 소나기의 약속에 지쳐,
온 몸 구석구석에 번지는 오르가즘의 유혹에 지쳐,
마음은 눈 돌리고 외면하여 나들이를 가 버리고,

알맹이 빠진 밤송이 껍질마냥
가시 백인 따가운 빗방울만이 창을 때리며
주인 없는 익은 가을 한 마당을 헤집어 갈긴다.

또 새로운 약속을 향해 메마른 봄으로 치닫는
하릴 없는 산책길에 파묻힌 사랑은,
10月은 달력에 박히고,
비 온 날들을 표시하여 응시하다
곧 격하게 찢어 내어 11月로 순식간에 도피한다.

흥건한 땀으로 젖은 손바닥은
길가 가로등마냥 뚝뚝 빛을 흘리고,
겨울은 11월에 성큼 다가와서는
소나무 숲같은 바람으로 귓가를 씻어낸다.
나는 아무래도 가을에 미련이 남았나 보다.
혹은 나는 아무래도 사랑에 미련이 남았나 보다.

가로수를 포기한 까치마냥 옥상에 둥지를 튼 채로,
나는 가을을 버리고 11월에 겨울을 만나야 하는 것을...
한적한 겨울이 오면,
10월의 가을을 잊고 손바닥만한 하늘을 그려야 하는 것을...

유독 포플러가 많은 가로수 사이를
나는 유유히 날며 하루하루 그림을 그린다.
사랑에 절은 고깃조각 같은 꿈을 꾼다.
가지만 흔들리면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나는,
겨울을 어찌 넘겨야 할지 모르는 날짐승이다.
비가 오지 않는 겨울, 그 긴 바램의 오솔길은
꽃입과 낙엽과 눈과 빗줄기의 옷을 번갈아 입으며
다시금 되돌아 오는 고통의 연주곡이다.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또한 쉽사리 시작도 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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