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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편의 시
사랑해 LIV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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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LIV (5번)

2001.5.21. 저녁 :12 퇴근길 전철 (수원 → 가리봉)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필연인가 보다.

봄에 가물때 비가 오기를 바라는
가여운 벼 이삭처럼
내 목마름의 목구멍은 목소리조차 막히어
네 눈물 방울방울 내안에 스며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숙명인가 보다.

너는 바람,
머리카락 날리는 샛바람 그 위세에 눌려
그저 하릴 없이 흔들리기만 했어도
팔 벌려 하늘을 가득 담는 나무,
나는 그런 나무로 뿌리 밖고 서서 너를 향해 키를 돋운다.

내가 네 사랑을 받는 것은
아마도 벌인가 보다.

간간히 나를 바라봐 주는 얼굴 한 가득
어색함 쪼끔 더하여
감추지도 못하고 돌리지도 못하고
한 계절 다 가도록
마냥 내 그림자 비추며 양지쪽으로 양지쪽으로...

네가 내게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마도 꾸지람인가 보다.

네게 바라는 것이 혹여 많지는 않은가,
내가 네게 주는 것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는
그 어지러운 양팔저울 흔들림을 내세워
나의 사랑이 과함을 무거워하는 아쉬운 저울추처럼
나는 '우리'라 칭하기에 부족함 없는 나눔을 담보로
네게서 고운 눈 흘김을 받는다.

내가 네게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그런대로 어려움 없는 사소한 일.
네가 내게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그보다는 조금 어려운 일.

나는 비록 필연이라 하나, 숙명이라 하나,
기껏 벌받는 개구쟁이, 꾸지람에 익숙한 철부지.
내게 사랑은 목 마른 이야기처럼 네게서 샘을 찾는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여행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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