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런 인생, 저런 인생 많은 세상일들 소설로 남겨주세요
고향
copy url주소복사
밥을 거른 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간다. 의사 말로는 병명도 모르는 불치병이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는가보다. 배가 고픈 것도 모르겠고, 아픈 것조차 익숙해서 모르겠다. 며칠 째 누워서 계속 아팠는데, 아픈 것이 정이 들었는지, 도통 떨어지질 아니한다. 아픔에 익숙해서 일까? 지쳐서 일까? 그렇게 나는 죽음의 길로 서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머리에서 열은 나고, 땀은 비 맞은 생쥐처럼 나를 적신다. 기침과, 설사, 구토도 하고 바지에 오줌까지 싸버린다. 내 몸이, 몸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책에서 봤는데 오줌 벨브를 조절하는 기관이 있다던데, 그 기관은 낯선 곳에서 자거나, 어릴 때는 그 벨브가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오줌을 자다가 오줌을 싸고, 어른이 된 사람도 이사를 하거나 하면 자다가 오줌을 싼다. 지금 내가 그런 것이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서서히 다시 내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도 않는 내가 없는 세상에 내 던져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살고있는 여기가 너무 낯설어서 바지에 오줌을 싸는 것일까?


내 나이 열 여섯. 한창 무서울 게 없는 나이다. 많이 먹고, 많이 자라고 하는 시기인데, 나는 무엇인가? 도데체... 나는 무엇인가?


내가 이곳 도시로 이사 온 지도 3년. 나는 원래 한 초라하고, 작은 시골에 있었다. 어릴 때 내가 학교도 안 다니는 네다섯 살 될 때, 그곳에서 같은 마을에 친구는 단 둘 뿐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요즘처럼 컴퓨터도 없었고, TV도 체널이 서너 개밖에 안나오고, 이것도 오후 늦게 야 나온다. 그래서 낮에 내 동무와 자주 놀았다. 팬티만 입은 벌거숭이로 논 가에서 올챙이도 잡고, 개구리도 잡고, 성냥과 라이터를 들고 와서 불장난도 하고, 그러다 동네 어른들께 혼나고, 반도(대나무 두 개에 그물이 연결되어, 고기를 잡을 때 쓰는 물건이다.)로 고기도 잡고, 그러다 보면 옷이 다 젖어 엄마께 혼나곤 했다.


한날은 개구리를 잡아 불에 굽다가 개구리가 너무 징그러워 엎어져 버렸다. 그래서 내 배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뜨거웠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 탓인지 동네 어른들이 달려와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시골에는 별다른 약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물로 씻고 민간요법이란 민간요법은 다 써보았다. 덕분에 나는 배에 상처를 남겼고 무지무지 혼났다.


그렇게 말썽을 피우던 꼬마가 일곱 살이 되어 그 옆 동네에 있는 작은 분교의 병설유치원에 입학하였다. 처음 학교라는 곳을 가보아서 어리둥절했다. 입학식은 어렴풋이 기억 나지만 운동장에서 조회 비슷하게 했던 것 같다. 엄마 손을 잡고 코를 질질 흘리며, 코를 얼마나 빨아댔는지, 입술 위가 퉁퉁 불어 있었다.


한날, 유치원에서 뱀을 봤는데, 6학년 형들이 돌을 마구 던져댔다. 나도 평소 징그러워 피하고 다녔던 뱀에게 복수를 하는 듯, 돌을 던져 댔다. 첨엔 꼬리에 돌이 맞아 달려들려고 하였다. 나에게 달려들려 하자, 6학년형이 대가리를 명중시켰다. 그러자 눈알이 튀어나오고 그 뱀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것을 교감 선생님이 보시고는


"느그들, 그라믄 뱜이 느그 잘 때 꼬추 물어간다."


하셨는데,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럼 오줌은 어느 구멍으로 눌까? 하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던 것 같다.


그 뱀 죽은 것을 말썽이 좀 심한 5학년형이 나무 작대기에 뱀을 매달아 누나들한테 달려가서 누나들이 고래고함을 지른 적이 있었다. 그형은 교감선생님께 혼이 나고 학교를 마치고 혼자 화장실 벌 청소를 했다. 재래식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청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나보다.


시골학교라서 가정실습이 있었는데, 그때 학교를 이틀정도 쉬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를 따라 밭에서 놀곤 했는데, 한날은 맨발로 돋자리 위에 있다가 꽃뱀 한 마리가 나와 도망갔었는데, 내 발바닥에 밤 가시가 찔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밤 가시가 내 발에 박혀버렸다. 그래서 걸을 때 비틀비틀 했고, 꼭 발목 삔 놈처럼 걸었다. 맘껏 뛰놀지도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시를 바늘로 빼면 된다는데, 눈이 어두워 뺄 수가 없다고 했다. 엄마는 겁이 나서 못 뺀다고 했고, 아버지는 좀 있으면 고름이 생기는데, 그걸 터뜨리면 가시가 딸려 나온다고 걱정하지 말고있어 라고 하셨다.


한날은 고모가 놀러왔는데, 그때는 처녀였다. 지금은 그때 나 만한 애를 가진 아줌마지만... 올 때마다 과자꾸러미를 사 가지고 오셨다. 그래서 고모가 너무 좋았다. 그때도 과자를 사오셨는데, 내 발에 밤 가시가 박혀있어 평소처럼 반기질 못했다. 그 어린것이 안쓰러웠는지 고모가 바늘로 나 발바닥을 쑤셔 가시를 빼 주었다. 그때 어찌나 아프던지, 소리를 지르고 막 몸을 비틀어 바늘이 내 발바닥을 한번 더 쑤실 뻔했다.


난 고모에게 안기어 나 같은 아들, 딸이 없던 고모는 아들, 딸이 생기면 젖 물리는 연습이라도 하려는 듯, 나에게 자주 젖을 물려주곤 했다.


그런 고모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 돼서 결혼해버렸다.


결혼식 날, 드레스를 입은 고모가, 고모가 아닌 줄 알았다. 그때 찍어놓은 비디오를 고모와 자주 보곤 했는데, TV에 내가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지금은 그 비디오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결혼한지, 일 이년이 지난, 여름에 내 사촌동생이 생겼다. 여동생이었는데, 어찌나 조그만 하고 귀엽던지... 사촌동생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가져다 대보니, 평소 조그만 하던 나도 크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행복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고 하다보니 내 학비, 가족 생활비가 부족해서 아빠가 시내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내게서 멀어졌다. 아빠란 존재가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내가 잠이 들었을 때 돌아오셨다.


그래도 행복했다. 개울에 가서 낚시도 하고, 피래미(민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와서 튀김을 해먹곤 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날들... 그런 평화 속에 암흑이 찾아왔다. IMF라는 것 때문에 아빠 공장이 부도나서 일자리를 잃으시고 설상가상으로 농사까지 흉년이었다(아빠가 일을 하러 다니셨기 때문에 농약과 비료를 제때 못 줬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가훈이 '화목' 이라는 작은 단어였는데, 점점 갈라지고 있었다. 아빠는 늘 술을 마셨고,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한번은 엄마가 아빠에게 심하게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적이 있다. 고무 호스로 맞았는데 때릴 때 '휙! 휙!' 하는 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맞았다. 할아버지는 말렸지만, 늙으셨는지, 아빠가 밀쳐 넘어지셨다.


결국 엄마는 가출을 하고 영영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가끔 엄마전화가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는 것이...


아빠는 엄마를 찾으려고 이모 집에도 찾아가고, 외가에도 찾아갔다. 어디 갔는지 모르냐 고... 이로 인해 아빠와 외가친척사이에는 선이 그어졌다. 정말 지옥이었다.


할아버지도 힘드셨는지, 자주 술을 드셨다. 그때마다 하는 소리가...


"니는 공부 열심히 해가꼬, 엄마 찾아라. 머스마 자슥이 이런데다 눈물 흘리지 말고."


지옥에서 그렇게 있다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엄마가 돌아오셨다. 경기도 좀 회복되고는 했지만, 아들을 놓고 그렇게 숨어 있기가 힘이 들었는가보다.


엄마가 돌아오고 아빠와 화해를 했다. 다시 찾은 천국에 나는 너무 기뻤다. 엄마도 다시만나고... 정말 행복하다. 엄마가 해 주는 따신밥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천국도 잠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늙으신 데다가 술까지 자주 드셔서 간암이 오신 것이다. 정말 비극이었다. 이렇게 비극일 수 는 없었다. 정말이지 사춘기 소년인 나는 죽고 싶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할아버지 손... 이젠 만질 수가 없다 생각하니 정말 슬펐다. 할아버지를 무덤에서야 볼 수 있으니... 정말 슬펐다.


"니는 공부 열심히 해가꼬, 엄마 찾아라. 머스마 자슥이 이런데다 눈물 흘리지 말고... 머스마 자슥이 이런데다 눈물 흘리지 말고..."


내 귀에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자꾸 떠돌았다. 마치 할아버지가 옆에 계신 것처럼....


할아버지를 보내고 그해 여름에 도시로 이사를 갔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작은 시골학교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전교생이 40명밖에 안 되는 곳에서 몇 백 명이 있는 학교란 정말 신기하고, 무서웠다.


학교에 오자 툭하면 시비를 거는 애가 있는가하면 내가 덩치가 다른 애들보다 작아 따돌림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선배들에게도 많이 맞고 돈도 빼앗겼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나에게 자폐증이라는 증세가 오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과 잘 놀지도 않고 혼자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정말이지 내 자신이 한심할 때는 애꿎은 내 손을 물어뜯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 고향친구들이 그리웠다. 고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다시 개구리를 잡으며 낚시를 하며 불장난을 하며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나의 병은 아마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화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근 2년 넘게 이 병과 싸우고 있다. 처음에는 감기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안 나아서 2년을 지냈다. 그랬는데 갑자기 이렇게 앓고 있다. 고향에서 있었던 일들이 필름 처럼 이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거칠지만 따뜻한 무언가가 나를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만인가? 이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내 앞에 누군가가 있다. 흰 머리카락... 까칠까칠한 수염... 어릴 때 이거보고 가시라고 하면서 막 만졌지... 점점 그 모습이 뚜렷해진다. 할아버지... 나에게 미소를 그리며 웃고 계신다.


"우리손자 왔나? 하하하... 기다리고 있었다."


난 이제 다시 간다. 고향으로.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않을것이다.








정말 글같은 글 써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노력해도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의 맛이 안 나네요. 충고 부탁드립니다.
0개의 댓글
책갈피 책갈피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