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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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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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재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할 사람은 희옥 외엔 아무도 없다. 선경은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한 영남의 빈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싱크대에 물을 한 가득 받아 놓고 트리오를 풀어 스폰지에 흠뻑 적셔 놓았다. TV에서는 아침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다.
싱크대에서 물 첨벙거리는 소리. TV에서 터져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분위기 있는 목소리. 거기에 막 울리기 시작한 전화벨소리. 선경의 주변은 그리도 산만해지고 있었다. 이미 손에는 부드러운 비눗방울이 가득히 묻어 통통거리며 터지고 있는 터라 선경은 전화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벨은 이내 멈춰주었다. 다시 물소리와 남자주인공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선경은 물과 남자를 번갈아 보며 손에 잡히는 그릇가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전화는 다시 부서져라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보통 때라면 한번 울다 지쳐버린 전화벨은 다시 울지 않았으려니와 오늘은 재차 울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두 번.....다섯 번... 선경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두 손을 감싸던 비누거품을 흐르는 물살에 말끔히 닦아내고 전화에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
선경은 되풀이해서 상대의 존재를 물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선경은 솟구치는 의구심을 억누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시 싱크대의 접시 따위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정주부의 하루가 조금 특별하게 시작된 것이다. 서른 다섯이 넘어선 중년의 여자. 식구들과 슈퍼마켓, 가끔 만나는 동년배의 친구 몇 명. 그녀가 가진 것이다. 마치 그것을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듯이 고수해온 것들이다. 물론 오늘도 그것의 범위를 넘어서진 않았다. 단지 정체불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온 것을 제외한다면...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선경은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이젠 비누거품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여전히 전화선 저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보세요"
선경은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상대방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었다.
"남수야."
"남수?"
"....!!!"
순간 선경은 화들짝 놀라버렸다. 전화를 할 수 없는, 아니 전화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이다. 감히 생각도 못했던 그에게 전화가 왔다. 감히..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귓바퀴가 후끈할 때까지 수화기를 들고 저편에서 어떤 말이라도 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적막은 오래지 못해 깨져버렸다.
"오랜 만이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그래. 오래간만이다. 그런데 어떻게..?"
선경은 무슨 말로 덧붙여야 할지 적절한 단어를 꺼내려 노력했지만 끝내 아무말 도 할 수 없었다.
"내일 5시에 3빌딩 정문에서 기다릴게. 꼭 만나고 싶다."
선경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남수는 수화기에서 손을 거두었다. 선경은 그저 '뚜뚜' 거리는 수화기를 들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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