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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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별 하나와 가로등
약간 퇴색된 듯 한 포도색 물이 든 하늘에 세개의 빛이 빛나고 있네요.
바로 달과 별 하나와 가로등인데 아무런 빛을 가지지 못한 내 부러움의 대상이죠. 그저 조그만 감탄사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제가 하는 전부일 뿐이구요. 하지만 달과 별 하나와 가로등은 저를 비추어 주었답니다. 그 빛들이 내 맘속에 가득히 찰 때면 모닥불 보다 따스함을 느낍니다.
달과 별 하나와 가로등은 아주 친해요. 어떤 날은 즐겁게 하늘의 신들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아쉽다며 헤어지고 또 어떤 날은 이 땅에 가득한 슬픈 이야기로 눈물 짖거나 말다툼으로 토라져 버리기도 한답니다. 그들은 지독한 잔소리꾼들 이지만 아주 편안한 친구들이에요. 내가 슬프거나 힘들거나 괴로울 땐 항상 나를 위로해주고 비춰주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모두가 조용하네요. 가로등 아저씨는 불룩한 배에 두 손을 올려놓고 고단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구, 별님은 아주아주 커다랗고 낡은 책을 읽고 있구, 달님은 아픈지 빛이 흐리네요.
가로등 아저씨가 그러는 데요 하루종일 바쁘게 일해서 고단하데요. 별님은 자신이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 알고싶어서 태양계 책을 본데요. 그리고 달님은 자신을 사랑하던 어린 영혼이 상처 받아 슬프데요. 달님이 눈물을 흘릴 때면 파랗게 창백해 지나봐요.
가로등 아저씨한테 제가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레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이세상엔 저의 머리, 어깨에 쌓인 먼지 만큼 있다는 군요. 전 고개를 갸웃 거렸지요.
그래서 별님에게 다시 물어 보았어요. 이 세상엔 사랑이 얼만큼 있나구요.
별님은 제가 바라는 만큼 있다고 말하네요. 전 다시 고개를 갸웃 거렸지요.
마지막으로 달님에게 물어 보았어요. 달님은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모두의 말을 믿기로 결정해버렸어요.(웃음) 오늘은 그냥 이렇게 그들과 같이 있다가 돌아왔어요. 고독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빨리 달님과 별님과 가로등 아저씨가 활기를 찾길 바래요. 그들이 우울하면 저도 우울할 수 밖에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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