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정말 기가 막힌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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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을 향한 미국의 공격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텔레비전에서
떠들어대고 있다.
화면엔 아프가니스탄의 한 소년이 정면을 향해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코 잊혀지지 않을 순수의 눈동자 속에서 난 하나의 깊은 슬픔을 떠올렸다.
무한한 미래와 꿈이 담겨져 있어야 할 그의 눈동자에는,
나의 뇌와 눈을 통해 순간 전이된,
이미 죽어버린 날들의 공허가 부메랑되어
나의 가슴 한복판에 슬픔의 깊은 우물을 파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소년에게도 미국의 무자비한 복수가 자행되리라.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무고한 시민들을 태운 여객기가 거대한 건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현실 속의 참사는 수많은 엑스트라와 세트들을 집어 삼킨 채 쓱싹 입맛을
다셔대고 있었다.
처절함, 공포, 분노...
어쩌면 영화의 성가신 꼬임에 못 이겨 잠깐 정신이 나갔던 현실이 저질러
놓은 일일 지도 모른다고 자위해 본다.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기에.

현실을 버리고 영화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
영화 속 세상이 싫어 현실로 도망나오려는 가상의 많은 인물들,
사이버 세상에 붙박인 사람들, 사이버 세상에서 현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세상에서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해 우리 모두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지?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와 영화의 가상의 스토리가 얼마 걸리지 않아 실제로
구체화 되어 버린 현 시점에서 어쩌면 우린 또 다시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되고 말리라.
생각만 해도 섬뜩한 영화같은 현실 속에서.

어느 한 아내가 이번 사건으로 죽기 전 남편에게 걸었다는 전화 한 통화!
'내가 죽더라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라는 말이 그 여자에게는
자신의 목숨만큼 절실한 生의 마지막 절규였으리라. 어제처럼 시작한 하루
속에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어제가 세상의 더없는 행복의 시간으로
정지해 버린 한 남자를 상상해 본다.
정말 기가 막힌 하루! 그 하루만 그의 시간에서 제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이리라.
사는 게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지루했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 단 하루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가슴에 머물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그리워하게 될 소중한 날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주어지겠지.
두고 두고 아껴서 오랫동안 나의 가슴을 덥혀 줄 그 하루가 내 일생에선
과연 어느 날이 될까?

내 마음 캄캄한 밤하늘에 붙박인 별처럼 빛나던 소년의 까만 눈동자가,
영원히 사랑할 거라며 울먹이던 한 아내의 아름다운 마지막 절규가,
이 가을을 지나고 죽음의 골짝을 훌쩍 뛰어 넘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만나거든 뭇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분자분 돋아나는 한 포기 싱싱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단 하루에
이렇게도 많이 거두어 가시는군요
인간이 달아놓았던
무수한 등불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너무 캄캄합니다
이렇게 시린 밤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는지요

성냥팔이 소녀처럼
이 밤
저의 열 손가락을 헐어
당신 앞에 나아갑니다

잠시 불밝히다 꺼져간
가엾은 영혼들을
부디 평안히 거두어 주소서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자들에겐
영혼의 등잔을 닦게 하시어
당신의 환한 빛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누어 가질 수 있게 하소서

작은 불꽃이 만들어낸
성냥팔이 소녀의
간절한 행복만큼
다시 살아 남은 자들에겐
밝아오는 하루 하루가
당신 안에서
더없는 희망과 기쁨을 누리는
生의 소중한
마지막 초침이 되게 하소서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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