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금연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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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일기 (13)



머슴아 새끼가 그리 용기도 없나 ?



칠십 년대
논산훈련소 제 연대 중대
훈련병
경계근무 야간 훈련시간
새어나간 담배불빛
단체 기합



11월 중순에 훈련소에 입소했다
피 교육생의 신분이라 언제나 배가 고팠으며 피곤하고 늘 잠에 겨웠다
한달 정도 받는 기초군사훈련을 그곳에서 받았지
훈련이 거의 끝날 무렵
야간경계훈련을 갔었어 부대에서 벗으나 외곽지역으로



야간 경계라 함은 말 그대로 밤중에 일정구역을 지키는 행위로서
경계하는 자는 자신을 숨기고 외부로부터의 적을 감시하는 것이기에
자신을 숨김에 있어 소리와 빛을 발산하지 말아야 하며
행동은 엄밀해야 함은 그 기본적 요소다
이미 우리들은 그것을 배웠으며 그 배운 사항을 실습하려온 것인데



멍청한 놈인지 영악한 놈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들 중 한 놈이 담배를 피웠어
그러나 정확하게 누가 범인인줄은 조교들은 알지 못했어
어둠 속이며 훈련장 건너편에서 보았기 때문이지



호각소리 요란하더니
난리가 났었지
훈련 중단
전원 집합
단체 기합
원산폭격은 기본이며
좌우로 구르고 앞뒤로 취침에다 온갖 형벌(?)을 다 내리시더구나
범인은 자수하라는 공갈 협박성 발언은 욕설과 함께 들려오고
부대에 귀환해야 할 시간까지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귀환은 해야하는 법
국방부 시계는 그래도 돌아가는 법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약이 오른 조교들은 길길이 날뛰더니
우리들을 팬티바람에 연병장으로 몰아냈지
연병장엔 녹지 않은 눈이 있었어
눈밭에 알몸으로 두 팔 벌려 서 본적 있는가 ?



사지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떨고
어금니는 앙 다물수록 이빨 부딪히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지
범인은 머슴아 답게 자수하라는 조교는 말이 수도 없이 들려왔어도
범인은 나서질 않았어
조교들도 지쳐버렸는지 하나둘 사라지더구나



마지막 남은 조교
찬물 한바가지 들고 오더니
손가락으로 우리 몸에 뿌려대기 시작했어
물방울이 몸에 닿을 때마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했어
황산 벌에 이는 바람 왜 그리도 차던지


한두 녀석들이 지쳐 쓰러지자
조교는 놀란 나머지 우리들을 세면장으로 몰아 넣더구나
세면장 한 귀퉁이에 웅크린 훈련병
서로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형벌 끝냈으면 내무반으로 가야하는 건데 웬 세면장 ?
그 조교 물 호스로 수돗물을 우리들에게 품어 대더구나
열평 남짓한 세면장은 삽시간에 물안개로 변하더구나 신기하리 만치
옆 사람 얼굴을 몰라 볼 정도로


첨엔 당황했지만 이내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지
더운물을 뿌려서가 아니라 수돗물의 온도가
언 몸보다 높았으니까 따스했어
눈밭에서 곧장 내무반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인 것 같더구나
내무반의 실내온도와 얼어버린 우리들의 몸과는 너무 차이나니까
감기 걸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 같았어


현명한 조교였지

물세례 끝내고 내무반 침상에 앉은 우리는
그 조교의 긴 설교를 들어야 했다
설교의 마지막 마디
『머슴아 새끼가 그리 용기도 없나 동료를 위해서라도 나서는 것이
진정한 머슴아 아이가 ? 』
침묵은 무겁게 흘렀다
.
.
.
.
끝내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어
고자질한 동료도 없었다
마흔 여명의 중대원은 한 명의 범인을 끝까지 감추어주었다
그것 또한 전우애다


나중에 안 사실
조교는 범인을 알고있었지만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범인 스스로 나서기를 기다렸던 거지
참 멋있는 조교였으며 경상도 사내다웠어

그 중대원으로 적과 싸웠더라면
백전 백승하였으리라


21. . 7
금연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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