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권위와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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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들은 일을 통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기술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 국가일수록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일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특히, 도시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그 조직의 힘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조직적 위력의 힘이 발달된 정도가 세계에서 1 ~2위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가 과거 봉건 사회와 일제 시대를 거치고 특히, 군사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형성된 상급자의 권위주의적인 의식은 아직도 우리들의 생활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나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선배들에 대한 깎듯한 예우와 그리고 선생님들에 대한 예우 등이 그러한 것의 예일 것이다. 군대 생활에서 익혔던 고참에 대한 놀랄만한 복종과 그리고 불복종에 대한 하극상의 용어는 얼마나 의식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직장 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上使에 대한 깍듯한 예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생각해 보면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가 있다.
먼저, 장점은 선배와 상사와 그리고 선생님의 권위가 다른 후배에게 전달된다면 그 일이 빨리 수행될 수 있고 선배의 일이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은 파시즘이란 인습이 그 속에 내재 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것에 대해 지적할 수 없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좀 더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것도 절약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의 처리가 미루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시즘은 상사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하게 된다. 직장은 일 개인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의 생존을 좌지우지 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살아가는 현대인과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그 파시즘에 묻혀서 지금도 두려움과 싸우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쯤 반성해 볼 일이다.
어차피 인생은 경쟁의 장이고 야생 세계에서 보이는 것처럼 투쟁과 다툼과 생존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한 바탕의 마당이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어찌보면 상사와 밑엣 사람의 관계도 생존을 위해서는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사가 무슨 소용이 있고 후배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트집 잡고 물고 늘어지며 온갖 궤계와 술수와 비굴과 아양과 비열한 수단이 동원되고 말할 수 없는 악의적인 행동이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과거로부터 이어온 파시즘은 한국 사회의 야성적 독성을 지닌 아주 명쾌한 지배자들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계승한 지배계층은 상사들이 한 것과 똑 같이 후배들을 지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파시즘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지배계층의 채찍이 되어 한국 사회는 피지배계층의 영원한 패배주의와 열등감과 드디어는 노예적 근성의 깊은 뿌리를 형성시켜 줄 수도 있다.
한국의 인권은 법률과 외형적 형식과 그리고 그 운영 방식에서 그 효험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면 개인에게 가해지는 파시즘적 요소는 결코, 가시지 않고 남아서 온갖 두려움과 아픔으로 인간의 권익을 파괴하고 있음을 두루 볼 수 있다.
직장에서 그렇고 학교에서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러하다. 오죽하면 과거부터 한국인은 두들겨 맞아야 하고 한국의 여인들은 북어 두들겨 패듯 패어야 맛이난다고 했을 것인가?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새로이 해 볼려는 욕심에 앞서 본인 스스로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한 자세를 취하지를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율적 습성이 몸에 배어들지 않는 이상은 연구와 창의적 사고를 어린 후배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리한 생각이다.
선생님 혹은 어른들의 인내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사와 후배들의 인내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서로가 대화할 수 있는 기풍을 마련해나아가야 한다. 기본적인 대화의 장도 마련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인권이 있을 수 있고 창의가 싹틀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회이든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는 빨리 없이할 수록 발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진리가 아닐까?
21. 3. 2.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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