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너랑 커피 한 잔 할 수만 있다면...(2부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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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어느 은행원에게...(1부)



아마... 그녀는 모를 것이다. 이런 외딴 사이트에 내가 사랑을 고백해 놓은 것을...
아마도 평생 죽음이 닥칠때 까지도 그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이 사실을 말해 주기 전까지는...

군대 말년쯤... 휴가를 나와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부대로 복귀하려는 길이었다.
난 그냥 부대로 조용히 복귀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용돈이라도 조금 쥐어 보내고 싶으셨는지 수중에 돈이 한 푼 없으면서도 용돈을 꼭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뭐... 굳이 아버지의 성의를 거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버지가 말씀하신 은행까지 가게 되었다.
아버진 필요한 돈을 찾으시고 계셨고 난 그저 은행안을 두리번거리며 훑어 보고 있었다.

그러다 유난히도 흥미있는 명찰을 하나 보게되었다. 바로 나의 앞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여은행원의 명찰이었다. 우연치 않게도 내가 초등학교 시절 짝 사랑했던 그 애의 이름과도 똑 같았다. 흔한 이름이 아닌데... 신기해서 그저 빙그레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는 순간 그런 웃음이 거두어 졌고 가슴 속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박동 소리만이 귓속을 울리고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래... 만약 내가 아는 그 아이라면 그애도 날 보고서 알아보는 듯한 눈치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의 다른 고객을 대하듯 편안한 그녀의 얼굴은 날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설사 그녀를 안다고 해도 초등학교시절 내 짝사랑이라해도 난 말 한 번 걸어보지도 못할만큼 용기가 없는 놈인데 라는 자기모멸적인 생각이 앞섰다.

은행을 나왔다.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고 아버지와는 헤어지고 난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선 온통 그 애 생각뿐이었다. 한참 동안 나의 인생에서 잠시나마 지워졌던 그때 그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약간은 떨리듯 설레기도 했다.

만약 그애가 맞다면... 비록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닮은 그 얼굴... 만약 그 애라면 어쩌나... 말이라도 걸어나 볼것을...
점점 후회가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쉬웠고 다시 그 장면이 내 앞에 놓인다면 꼭 물어볼 수 있을 것인데란 헛된 생각만 떠 올랐다.
다시 가서 물어볼까? 하지만 그러기엔 동기부족... 다시 그 은행에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통장이라도 은행에 놔두고 왔더라면... 아님 지갑이라도... 그럼 그 핑계로 다시 가서 말을 붙일 수도 있을 텐데란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너무나 답답했다. 너무나도...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그리고는 아주 호들갑스럽게 나 큰일났어... 나 큰일났어... 라고만 했다.
친구는 영문도 모른채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복귀 시간까지 여유가 많은 터라 그 친구에게로 갔다.
친구에게 가서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얘기를 하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럼 가서 말을 걸어라고 했다.
누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말을 못거는 건가?
친구에게 은행갈 일 없냐고 난 막무가네로 물었다. 없으면 은행갈 일 만들어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친군 전혀 도와줄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고 그럼... 최소한 은행앞까지라도 같이 가 달란 부탁마저 거절을 했다.

그런 친구의 반응에 흥이 날리 없었고... 나도 모르게 포기를 하게 되었다.
하긴... 갑작스레 내가 이러는 게 너무나도 유치하고 누군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웃음거리밖에 안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 잠시 잠깐의 흥분된 감정때문에 내가 있지도 않던 사랑을 사랑인 것 처럼 과장시켜 꾸며 댔을 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많이 예뻐진 그녀의 모습에 내가 괜한 말도 안되는 관심을 보인건지도 모른다.

친구는 내가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버스 정류장까지 날 데려다 주었고 그의 배웅에 감사하며 버스에 올랐다. 이젠... 딴 생각 할 시간도 없고 그저 말없이 터미널로 가야만 한다.
버스를 타고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마치... 드라마같은 영화를 한편 보고 나온듯한 멍한 자세로...

그러다 내가 찾아갔었던 은행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춰섰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마자... 난 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래 난 은행으로 향한다... 은행으로... 지금 물어보지 못한다면 평생 풀지 못한 이 궁금증을 안고 살아야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삶인가! 사람사는데 무엇이 부끄러우며 그것 하나 물어보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은행 앞까지 왔고 은행 문앞에서 다시 약간 주춤거렸다. 방금 전과는 달리 약간 기가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심한 게... 바로 그 다음 장면까지 가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사고들이 너무나 웃긴다.
난 생각했다. 그래... 미친척 하는 거야. 까짓거 대한민국 남아로써 이게 뭐 대수인가. 군대에선 이 보다 더한 수모도 겪었는데... 아니면 어떤가. 잠시 얼굴 붉히며 나오면 되는 것이지. 불과 3분이면 모든게 판가름 난다...

은행문을 열어 젖히며 그녀가 앉아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용기있게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내 발걸음 직각으로 꺾이더니... 그녀가 아닌 구내 전화박스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앗... 이게 아닌데...
전화박스 앞까지 온 난... 마지 못해 수화기를 들고서 전화하는 척을 했다. 수화기가 너무나 떨렸다. 나름대로 수다를 떠는 척 이런 저런 말을 하구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수화기만 내려놓은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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