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ve is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주소복사

First written by Jason in June 1999
And revised in July 2
두 번째로 내리는 대만의 장개석 국제공항은 처음에 보았던 때보다 더 작아 보였다. 9년 추석연휴의 첫날이다. 대만의 공기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익숙해진 느낌이 든다. 대만대학교에서 唐詩를 전공하고 있는 내 친구 ‘소’가 표를 사서 타이뻬이까지 리무진 버스를 탔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산의 나무들은 개월 전보다 더 푸르렀고 하늘은 따뜻한 가을날씨를 보여주었다.
잠시후 소가 사는 대만대학교 외국인기숙사에 도착했다. 비를 심하게 맞아 검붉게 녹슨 자전거가 버려진 뒷마당을 지나 기숙사 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숙사 방은 길쭉한 마분지 상자처럼 생겼는데 왼편과 오른편 양쪽에 좌우대칭으로 옷장과 2층 철제침대 그리고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유빛 책상이 놓여있었다. 대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지만 천장이 상당히 높은 남방계 구조를 하고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벽에는 회백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천장에 달린 에어콘은 윙윙거리면서 돌고 있었다. 소가 사용하는 왼쪽 책상위 서가에는 唐詩관련 서적들이며 중국철학사 그리고 주역 등이 가지런히 꼽혀 있었다. 내가 사준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과 쿤데라의 “불멸”도 꼽혀 있었다. 소는 한 권은 읽고 나머지 한 권은 아직 못읽었을 것이다. 친구를 오래 사귀다 보면 이 정도는 말 안해도 알게 된다. 다른 편 책상에는 소가 애지중지하는 고물 TV가 한 대 놓여있었다. 창문밖으로 담쟁이 넝쿨처럼 TV 안테나선이 뻗어 나갔다.
이 방은 원래 2인용 기숙사인데 어찌어찌해서 당분간 소 혼자 쓴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소는 운이 좋다. ‘생활복’ 이라고나 할까? 그날 밤 소는 오른편 침대 1층에서 자고 나는 2층에선 침대난간을 부여잡고 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2층 침대 위쪽에서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에 부득부득 우겨서 2층에서 자게 된 것이다. 2인용 기숙사에 2층 침대 2개를 갖다 놓은 것은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하지만 이게 다 천장이 높아서 일거라고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보다가 잠을 잤다.
다음날은 휴일이어서 오랜만에 소도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아침 1시에 일어난 우리들은 어제 사범대 앞에서 사온 과일들은 펴고 한움쿰 먹고 곁들여 빵 몇조각을 먹었다. 과일들이 내 눈에는 상당히 기괴하게 비쳐졌는데 보기와는 달리 맛이 있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길거리 행상에게서 신용카드로 샀던 - 농담같지만 여기서는 그게 가능하다 - 과일, 즉 우리나라 사과와 오이를 합쳐놓은 것 같은 과일을 다시 먹으니 원기가 돌았다. 유학생활 하느라고 빵맛을 알아버려 매일 빵을 먹어야 한다고 투덜대는 소와 함께 물을 끓여 차를 마셨다. 재스민차.
처음에 차를 잔에 따라 두었다가 잠시후 버려 찻잔을 데운 후, 다음 잔부터 홀짝 홀짝 하고 따라마셨다. 찻잔을 이렇게 데워야 차맛이 난다. 중국어로 재스민차는 “향기나는 조각” 정도의 명칭으로 불린다. 나는 이 중국어 어감이 좋다. 香片. 샹피앤.
그 당시 서울에서부터 영어번역일을 하다 대만여행중에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일거리를 가져온 나는 소도 마침 중국어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친구는 통하는 게 많은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에겐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면 몹시 즐거운 일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위력적으로 느껴졌다. 때로 이 사람은 진리를 꾀뚫는 말을 한다.
그 후 대만에서의 일동안 우리들은 낮에는 조용히 등을 맞대고 번역을 하거나 도서관을 들락거렸으며 간간히 차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날씨는 몹시 덥거나 비가 오거나 했다. 우기의 시작일까?
내가 미국의 교육제도에 관한 자료 번역을 2/3정도 마쳤을 때 소도 애완동물 기르기 매뉴얼 번역작업을 거의 다 마쳐가고 있었다. 정오였다. 밖에는 비가 소리없이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7층 창밖의 기숙사 정원에는 운동장 개 정도 붙여놓은 것 같은 부지에 인공조림된 아열대성 나무들이 밑의 흙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햇볕이 드는 동안에도 이 정원은 눈이 휘둥그러지게 상쾌하고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하지만 이때까지 비오는 날 정원의 아름다움은 미쳐 보지 못했었다.
둘이서 번역을 하는 중에 소의 작은 CD-Player에선 중국 전통악기인 얼후 - 2줄짜리 현악기 -로 연주하는 Kenny-G의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All for one의 I swear를 중국여자가수 네명이 부른 곡이 이어졌다. 원곡보다 더 원곡같은 노래였다. 이어서 소가 좋아하는 클래식 기타 소리가 들리는 동안 우리는 찻잔을 입으로 핥으며 번역에 열중했다. 도대체 미국교육제도에서 Voucher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지? 하고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장학우의 노래 )중 我的愛一天比一天地熱烈 - My love is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than ever - 라는 가사가 흐르면서 나와 소는 둘다 자신도 모르게 번역작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음색이 꺽였다가 다시 유순하게 붙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금속성의 반주에 섞이며, 침잔한 비의 분위기에 파묻히는 그의 노래는 마치 호수에 몸을 담을 때 귀에 스며드는 물처럼 우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헉, 하고 동시에 깜짝 놀란 우리들은 등을 맞댄채 번역하느라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연필을 놓았다. 덜컥 하고.
휴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지른 채 소가 입을 열었다.
“정말 노래 잘 부르지.”
“정말 대단해.”
내가 대답했다.
소와 나는 막 데운 물을 찻잔에 다시 붙고 이 전설적인 노래의 후렴구를 따라불렀다. 讓ni的生命只有甛和美 - (I wanna) make your life only sweet and beautiful - 그때 나는 창을 열고 샛파랗게 무성한 야자잎들 사이에 내리는 연무같은 보슬비를 바라보았다. 시야의 끝에서는 도시 외곽의 산이 장중하게 그리고 희미하게 버티고 있고 기숙사 앞마당부터 그 산까지 짙은 생명력의 나무들이 첩첩 쌓여 올라갔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가랑비의 서늘한 기운과 회백색 벽에서 우러러 나오는 간결함, 그리고 바닦에 남겨놓은 과일이 풍기는 향기며 따뜻한 재스민차의 온기를 동시에 느꼈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더 없이 아름다운 이 순간은 이렇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창가에 선 채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느끼며 그의 노래를 온 몸으로 소름끼치듯 들으며 대만에서 맞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나는 보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뤄 빚어낸 이 아름다움은 그 어느 한편만의 아름다움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서 존재한다. 저 멀리 벽을 넘어서 공기를 가르고 숲을 헤치며 물결치듯 굉장한 음색이, 경이적인 노래가 흐른다. 나는 그 파동에 뒤섞여 온 몸과 정신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전보다 더 강해지고 아름다움에 충족된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다시 나를 거쳐가진 않았다. 시간을 정지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속에서 살고 싶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다음 소는 손가락으로 머릿칼을 가지런히 하고 나는 왼손으로 뺨을 긁적거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에 한번밖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해 묘사한 영화를 만났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 Blade Runner를 두 번째 보았을 때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 로이(Rutger Hauer분)가 죽음의 순간에 인간을 구하고 예수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간을 구원한다. 그때 로이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듯 생전에 자신이 바라본 믿을 수 없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장면들에 대해 다음과 말한다.
- 나는 당신들 인간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을 보아왔다. 오리온 성좌(혹은 우주선)의 가장자리에서 빛을 발사하는 공격선들. 탄호이저 게이트의 암흑속에서 번쩍이는 C-빔의 광채. 이 모든 순간들은 시간속에 묻히겠지, 마치 비속의 눈물처럼. 자 이제 죽을 시간이다. -
-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ness at Tan 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대만대 기숙사의 비속에서 아름다움이 돋아나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로이의 마지막 대사에서 눈물이 나왔다.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시간속에 묻히겠지, 마치 비속의 눈물처럼.”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 어떤 것들이며, 또한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고통과 기다림이 있어야만 한다. 아름다운 것은 그만큼 귀중한 것이어서 소중히 아껴주어야 하고 가슴속에 갈무리해두고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시간의 빗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대만의 비 내리는 사진을 아직도 내 서가에 꽂아놓고 있다. 이 사진은 나에게 몹시 촉촉한 심성을 심어주고 있다. 그 습기차고 약간은 서늘하고 식물들이 부쩍부쩍 자라는 게 보이는 그 모습에서 나는 지친 삶에 힘을 얻는다. 식탁에 놓인 노란 국화꽃에서도 나는 삶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간혹 장학우의 ‘My love is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than ever’구절을 부르곤 한다. 내 친구 Luckie도 나와 함께 이 노래를 연습한다. 대만의 비내리는 기숙사 풍경은 나를 몹시도 풍요롭게 했고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뜨게 만들었다. 마치 나의 정신에 스위치를 넣어준 듯한 정경이었던 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이 내게 준 영감에 대해 감사를 느낀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로 인해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지은이가 무었에 감동받았는지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 이백의 시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순간적인 아름다움은 인생 전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을 잡아내는 이백의 천재성에 나는 감탄할 뿐이다.
중국 唐代 시인 이백의 ‘달 아래서 혼자 마시며’중에서
내 노래하니, 달은 배회하고
내 춤추니, 그림자도 움직여.
(깨었을 때는 함께 즐겼으나,
취한 뒤엔 서로 흩어졌네.)
As I sing, the moon lingers about
As I dance, my shadow seems to fly.
Epilogue.
이 글을 쓴지 1년 만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Julia로부터 장학우 노래의 원본 일어판 CD를 얻게 되었다.
“My love is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than ever.
I want to give you more love than ever.
I just want to make your life sweet and beautiful.”
이 후렴구를 내가 우연한 기회에 두세번 중국어로 불러주자 그녀가 일어 가사로 부분부분 따라 불렀다. 그래서 며칠후 나는 일어판 CD를 Julia에게서 빌렸고 화기소림의 고전(classical) 주제음악을 함께 테이프에 담아 밤 12시 집에 가는 길에 자동차에서 계속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소와 나는 3-년전에 화기소림을 보고 같이 울었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였다.
물론 지난 1년동안 나와 내 주변엔 그동안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노래를 같이 따라 불렀던 luckie는 내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소는 대만유학을 마치고 1-2년간 서울에서 박사 과정을 잠깐 밟게 되었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일례로 나는 아직도 대만에서 폭풍을 뚫고 오토바이를 탄 채 비를 흠뻑 맞으며 가서 먹었던 찌룽 사원앞 노점상과 타이뻬이 사범대 길가의 양고기 요리가 그립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밤 12시의 시원한 대기를 가르고 집에 가는 차의 유리창과 윗면에 굵은 빗방울이 자주 듣는다. 그리고, 일본그룹 Southern Allstar의 오리지날 원곡을 최대음량으로 자동차 운전석에서 들으며 아내와 나는 후렴구를 중국어로 따라 부른다.
“Wo di ai yi tian di yi tian de re lie ~”
때로 비가 심하게 올 때면 우리 둘은 이 노래를 들으며 그대로 한강 다리를 넘어 남산에 있는 하이얏 호텔 1층 커피숍에 들른다. 밤 12시 반부터 1시까지 아내는 아이스크림과 포도주를 들고, 나는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 소가 늘 말하던 화엄경의 세계인 한강 다리와 한강변의 수많은 가로등을 본다. 아내는 가져 온 책을 조용히 읽기도 하고, 나는 노트북 전원을 넣고 1년전에 써 놓았던 글들을 수정하다가 비가 계속 듣는 남산로와 한남 대교, 그리고 신사 사거리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나는 오디오 장비가 허락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 노래를 다시 만들고 싶다. 첫소절은 중저음과 허스키한 목소리의 일본어판으로 녹음하고 두번재 소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다함이 없습니다.(愛不完, ai bu wan)” 부분은 장학우의 미성으로 듣고, 절정부분은 Southern Allstar와 장학우의 목소리를 같이 녹음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이 테이프를 같이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아내가 나에게 좀 변태적이라 말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두 개의 노래를 두개의 오디오로 동시에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왼쪽 귀에서는 여린 중국어가 오른쪽에서는 허스키한 일본어가 나오는 것이다.
내 친구인 “So Big Man”은 타갈로그어판 노래를 사와서 아직도 이 노래의 원곡이 필리핀곡인줄 알고 있기도 하다. 정말이지 근사한 노래다.
0개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