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한칸의 창.. 한조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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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같은 은빛하늘이 사무실 유리창 한쪽 귀퉁이를 채우고 있다.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언제나 조그맣다.
그 조그만 하늘로 나는 사계의 하늘을 본다.
나는 저만큼의 하늘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대학시절, 학교 꼭대기인 문대 앞마당에 들어서면 저 멀리 아파트에 가려
들쭉날쭉한 광안리 바다 한조각을 볼 수 있었다.
걸어가는 길과 나란히 선 그 바다를 고개 숙이고 걷다가
그 광경이 끝날 지점에서야 고개들어 뒤돌아보곤 했다.
왜 항상 뒤돌아보듯 바다를 보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의미없이 그렇게 되었던 것 뿐이다.
그때는 그만큼의 바다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작은 바다이나 바다의 모든 것은 다 담고 있었다.
햇살의 반짝이도, 비의 어두움도, 그 푸르름도.....
다른 것이 있다면 항상 고요하다는 것, 움직임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바다의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었던 문대 앞마당이 품은 바다.
그 바다를 나는 광안리라 하지 않고 문대 앞마당이 품은 바다라
혼자 부르곤 했다.

일상에 둘러싸인 광경은 언제나 부분이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은 더욱 한정적이다.
그만큼의 크기에 내 눈은 길들여져 있다.
윗부분만 보이는 간판, 맞은 편 건물 2층 창문, 그 옆 1층건물 옥상 위에
세워진 사다리의 꼭대기 부분, 책상에 가려진 난초의 줄기 등등
내 자리에선 간판의 전면을 보지 못한다.
2층 건물의 1층 창문을 보지 못하고 옥상의 사다리 전체를 볼 수 없다.
난초가 세워진 창문난간도 보지못하고 그 화분도 보지 못한다.
모든 것은 부분들이 조합된 하나의 광경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 하나하나의 전체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전체 모습을 아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만큼만 이해하고 바라보면 된다.
다른 위치에 서면 그 사물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보이는 것을 확대해석하거나 전체로 오인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보이는 만큼만 그 사람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의 모습으로 인해 내안에 생기는 많은 추측과 생각들을
그 사람에게 대입시킬 필요는 없다.
본연의 모습이외에 붙여진 추측은 나로 비롯된 다분히 주관적인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개입할 여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것처럼.

때론 더 이해하고픈 사람이 있다.
더 알고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서 사랑하고픈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그 시선조차도 쫓아가고픈 사람이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론 갈증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이라 부른다.
내가 보는 어느 곳에도 있는 사람.....
바다에도, 맞은 편 건물 2층 창문에도, 사다리 꼭대기에도,
하늘에도, 간판에도,
그리고...... 눈을 감아도....
눈을 감아도 어둠속에서 빛을 만들어 얼굴을 보이고야 마는 사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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