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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편의 시
붉은 지갑을 열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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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갑을 열어 봐

어두운 빛 붉은 지갑을 열어 봐
단발머리 조용한 미소가 반듯하여
웬지 낯선 신분증 몇 개
졸졸이 줄 서 순번 대기하 듯
지루한 네모난 카드 몇 개
막다른 좁은 골목 담벼락엔
연보라 연초록 부대끼는 몸 꼼짝 못하는
비릿한 지폐 몇장
좀 더 헐렁한 지퍼 속 둥근 토큰 서너개
철 지난 공과금 영수증, 사은 선물권, 헌열증서
할인 쿠폰, 복권, 상품권, 수험표.....

또독! 소리내어 하나라도 기어나오지 못하게
꼬옥 잠그고 움켜쥐면
자!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손때 녹녹해져 모서리 낡음거리는 지갑속
아우성에 귀 기울여 봐
가벼운 일상들 그래서 한줌 밝을 것도 없이
꼬물거리는 그래서 나른한 홍등과 같은
그래서 조금만 흔들려도 온 방이 출렁거려
중심 잃고 멀미하고 말 그 나락 끝으로 가
거기 숨죽인 바람인 듯 서 있어 봐

얼굴 부벼대는 바람 어디서 불어 와 어디로 가는지
융숭한 바람 드나들어 환하게 뚫린
그러나 아픈지도 모를 폐허의 가슴에게 물어 봐
꼬옥 잠겨진 붉은 가죽 살점 하나 움켜 쥐고
떠날 수 있는 곳 도대체 어디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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