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신어라




오래 전 지붕위로 힘껏 던진 신을 내려 새 신을 신어라
장독대 귀퉁이에 세워 놓은 바싹 마른 운동화를 내려라
목탁을 깎아 만든 나막신
십자가를 다듬어 만든 장화
숲 속에 휙 벗어 던진 등산화
우물에 풍덩 빠뜨린 고무신
그런 너의 신을 내려 고이고이 다듬어

조심스레 신을 신어라

구름 위에 구름이 구름 위에 또 구름이
그 위 구름위로 올려놓은 신을 무시해라
저 곳에 있는 것이 신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신이 아니다
내 앞에 놓여진 신을 신어라 내게 맞는 신을 신고 펄쩍 뛰어라

내가 신을 신이 크다고 좋으냐 작다고 귀엽냐


내가 인간인 한 내게 맞는 신을 신으면

신이 곧 나이다


말할 필요는 없다 걱정할 일도 아니다

백날 떠들어야 소용없다


신을 신어라


신을 껴안고 말하는 자 웃기지 마라


그 말 들으러 오라는 자 고개를 숙여라


고고 하게 굳어진 네 목이 부러진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봐라

다시 한번 바라보고 또 바라봐라


시간이 신을 변하게 했다


물 마시는 자여
똥을 싸는 자여
섹스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이제는 신을 신어라
신을 신고 먹고 싸고 있는 힘껏 부둥켜안아라
신을 신고 비를 맞고 차를 타고 진흙탕을 피해라
신을 신고 온갖 곳을 다니며 온갖 행동을 하라
그리고 쉬어야 할 땐 신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니 맘 편한 대로 쉬어라 푸--욱

주제:[(詩)기타] 연**영**님의 글, 작성일 : 2000-04-11 00:00 조회수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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