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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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상 본적이 기재되어 있는
경남 합천 초계
그곳에 근 25년 만에 가보았다
어릴적 기억이 날 리 없다
내가 5살때 그곳에
아버지랑 벌초를 하러 갔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는 낫으로 벌초를 하고
난 곁에서 개구리랑 놀며
도마뱀 꼬리를 잘랐을 것이다
그곳엔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편안히 누워계신 곳이다
난 물론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벌초를 하며
여긴 너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누워계신 곳이야 하며 말해주셨다
그때 아버진 낫으로 풀을 베며
아버지께서 나중에 누울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셨을거다 아마
어린 나는 아버지의 힘센 팔뚝을 보며
개구리랑 놀기 바빴다
도마뱀 꼬리를 끊기 바빴다
그 곳에 25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계속 벌초를 다니셨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가지 않았다
작년까진 아버지께서 벌초를 하셨다
하지만 올해는 아버지께서 그곳에
편안히 누워계시기 때문에
내 손으로 아버지의 무덤에 벌초를 했다
그 날이 설마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 몰랐다 정말
십년 후 난 또
나를닮은 내 자식과 이곳에
벌초를 하러 올 것이다
벌초를 하며 내 자식은
예전에 나처럼 개구리를 잡거나
도마뱀 꼬리를 끊으며 장난 칠 것이고
난 또 예전에 아버지처럼
힘센 낫으로 벌초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 말해줄 것이다
아이야 이곳은 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편안히 누워 계신 곳이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그리고 한쪽 구석을 가르키며
아이야 이곳이 네 아버지가
나중에 편안히 쉴 곳이다
아이는 자라 나중에 어른이 되겠지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누워있으면
씩씩한 내 아이는 또다시
힘센 낫을 들고
내 무덤의 풀을 베겠지
그리고 그 아이는 또 아주 작은 아이에게
아이야 이곳은 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편안하게 누워있는 곳이다
라고 알려주겠지
그애가 내 손자가 될 놈일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그냥 조용하게
모든 것이 늙고 변하며
모든 것이 사라지고 태어나며
모든 것이 영원히 정지한다는 것을
나이를 먹는 내가
조금씩 느낀다
처음으로 벌초를 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다
나도 늙어갈 것이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것이고
난 죽을 것이고
언젠가 내가 편안히 누워있는
동그란 무덤위로
씩씩한 내 아들이 낫으로 풀을 벨 것이며
사랑스런 내 손자가 장난 칠 것이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것은 변한다는 것 뿐이다
나는 너무 그것을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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