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아버지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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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게다.
호미곶 어디에 묻혀
바닷 바람에 절고 파도 소리에 깎여
세월처럼 잊혀질 게다.

아버지는 내 나이처럼
마흔 두 살에 새 여자를 얻었다.
그 날 이후 아버지도 나도 웃음을 잃었다.
실내화 없어 학교를 갔다 오는 날이면
양말에 커다란 구멍이 나곤 했다.
그 때마다 육십 촉 백열등 아래서
이십여 년 분필 잡던 손을 놀리며
아버지란 이름으로 구멍만한 아픔을 꿰매곤 했다

낡은 기왓장 사이로 빗물이 스며 들고
마룻바닥 삐걱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던 날 밤,
새엄마는 아버지를 꼭 빼닮은 아이를 낳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당신의 아버지에 떠밀려 조촐한 짐에 새 식솔을 데리고
포항으로 떠났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당신의 아버지는 먼 고향 땅을 찾아가
이그러진 천륜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채,
당신의 이름으로 피를 토하며 땅에 묻힌 것을 나는 기억한다.

삼 년 뒤 어느 날,
아버지는 바다가 멀리 보이는 무룡산에 숨어 와 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살았던 은둔 생활도
화전밭과 산림 훼손 벌금장뿐이었다.
화로 위 빠알간 슻불 위에
찌빠구리 새가 지글지글 타던 밤,
형과 나의 손을 말없이 잡는 밤,
그날 밤 아버지는 남몰래
아버지란 이름으로 눈물을 흘렸을 게다.

그 날 이 후, 사람 없는 산골엔
진달래가 몇 번을 지고 폈는지 모른다.
간혹, 아버지의 소식이 동해안을 따라 들릴 때면
가끔씩, 아주 가끔씩 이유 없이
난 그 곳을 찾아 가곤 했다.
그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내 핏줄을 타고 심장을 압박했다.

영안실에서 아버지와 마주했다.
노동으로 지친 얼굴과 손은 녹슨 철을 닮았다.
옆에는 피 묻은 제철 공장 하청 잡부의 옷이 있었다.
전 날, 시외 버스 정류장에서 다 벗겨진 이마를 쓸어 올리던 아버지가 평화로웠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으리라던,
내 앞에서의 그 부끄러운 고백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나도 눈물을 흘렸다.
이유야 어쨌든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주검 앞에
아버지란 이름의 무게보다, 서른 살의 내 미움보다 더 서글펐다.

두 아이가 내 삶에서 뛰어논다.
나의 어깨에 매달린다. 무릎에도 앉는다.
아이들은 지금 나를 아버지란 이름으로 부른다.

나의 아버지 역시
아버지란 이름으로 세월처럼 잊혀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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