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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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덜 된 걸음
성왕 산 넘어 두 시간 통학 길은
산을 넘기도 전에
아침 밥 꺼지고
나는 숨 찬 한 마리 노루 되어
수풀 헤치는 종가 집 장남.
가방 속
백지 같은 보자기에 든
보리 밥 물리치고
당당히 짊어진 쌀밥 도시락은
식구들의 미래며 꿈이다.
댓 돌 위에
엽서처럼 가지런히 정리된 운동화는
천재 인 줄 믿고 사는 아버지가
풀이 채 자라기도 전에 쳐낸
마음의 신작로를
서해바다 삼아 항해할 군함이다.
멀미가 난다.
한 마리 노루로
들녘을 헤집고 다니고픈 맘 간절한데
교복 젖을라 나보다 한 발 앞서
싸리비로 이슬까지 털어 낸 아버지는
이 길 내어 주고
쌀 밥 값으로 사자되라 하니
아직 선 어깨는
제풀에 무너진다.
해 떨어져 어둠 내리는 무렵
산을 다 넘어 오기도 전에
아들아, 낯익은 음성
밤나무 아래서 헛기침하며 튀어 나오고
나는 땀에 밴 검은 색 군함을
거부하지 못한다.
내 흰 어깨에
당신들과 어린 세 동생이
책가방 보다 무겁게
얹혀져 있음을 인정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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