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또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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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감, 미동...
처음엔
거의 의식 없이 그렇게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환한 세상이 열리며
커다란 변화가 온몸을 지배했다
소리가 들리고
눈이 뜨이고
모든 감각이 열렸다

난 사람들 속에 있었다
큰 사람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난 길을 걷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지만
나를 알아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와 함께 머물러 주던 사람들
그들은
내가 지쳐서 주저앉을 때면
날 업어주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했다

길은 여러 갈래였다
하지만 걱정 없었다
나의 사람들이
언제나 인도해 주었으니까

거리의 풍경은 정말로 멋이 있었다
때로는 여린 잎들의 싱그러운 속삭임으로
때로는 무성한 잎들의 넘치는 강인함으로
때로는 잘 익은 소담스런 열매들로
때로는 벗은 가지에 내려앉은 순백의 설레임으로
채워지고 또 채워지곤 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했다
어느 길을 가든
그 풍경들은 똑같은 변화로
우릴 맞아 주었다

이런 변화가 얼마나 반복되었을까?
길을 가면 갈수록
나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멀어져 가고
이젠 나 홀로
길을 선택해야 했다

한 번은 세 갈래의 길을 만나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지껏 안전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젠 나의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택한 길
그 두 번째 길은
울퉁불퉁한 오솔길이었다
조금 두렵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설레임을 안고
난 산책하듯이 느릿느릿
여유있게 걸어 보았다
그곳은 아주 평범했다
바람이 좀 세게 불긴 했지만

얼마쯤 걸었을까?
내 곁엔 한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우린 어느 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를 몹시 위해 주게 되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므로
우린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따뜻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에 휩싸여 우린
어느 새 하나가 되었다

그 후로
우린 늘 함께였다
때로는 힘든 길을 택해
불행이 닥칠 때도 있었지만
우린 서로를 위로하며
잘 견뎌내곤 했다

얼마 후 우리에겐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다
작은 사람들!
우린 그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과거 어느 때인가
나의 사람들이 내게 그랬듯이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의 사람들이 또 다시
하나 둘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먼 길을 가면 갈수록
난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기운도 없어지고
머리는 하얗게 바래지고
눈도 귀도 점점 약해져 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점점 줄어들었다

언제까지나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난 안다
이젠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나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그들 곁에서 아주 멀리
사라져 갈 것임을

마음이 허전하다
무거운 외로움이 어깨 위로
지그시 내려앉는다
끊임없이 걸어온
나의 길을 돌아보며
난 그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본다
희미한 눈물 속에
길 끝에 서 있는 작은 문 하나
기운을 내어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나의 사람들을 뒤로 한 채
그 문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면서

이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단지 혼자일 뿐
나의 뒷모습이 그들에게서
점점 사라져 간다

저 신비의 문을 들어서면
나의 여행은 이제 막을 내리리라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으리라
정말 힘겨운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저 문 뒤에 또 다른 길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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