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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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10. 밤 9:15 종로3가 →신길역 1호선 전철

전철은 시청을 지나고,
사랑이 가득한 순수의 불덩이는
뺨을 가볍게 스쳐 가는 간지러운 봄내음에
맑은 눈을 찡그려 실눈으로 차창을 봅니다.

전철은 서울역을 지나고,
사연이 가득히 고심에 찬 사람들 틈에서
투명한 얼음의 조각같은 열정으로
시인은 표정을 살피며
피로를 덮어 주는 어둠을 담요삼아
세상에 휴식을 줍니다.

전철은 용산을 지나고,
서쪽을 향하는 수많은 발길들이
저마다 한길을 가는 모양새에
사랑하는 양, 연인인 양,
보살핌으로 약속하는 그리운 시선을 발견합니다.

전철은 노량진을 지나고,
행복을 그려내는 굵은 주름의 중년에게서
타협을 모르는 외곬수처럼
다만 살아 있기에 지켜 가야 할,
소중한 것들로부터의 존재의식을 느낍니다.

전철은 대방역을 지나고,
시인은 조용히, 또는 시끄럽게 아우성치는
눈동자들에게서
작으나마 식지 않을 따뜻한 안식을 느낍니다.

전철은 신길역에 서고,
아쉬움을 내려 놓고,
행복과, 사랑과, 희망과, 안식만을 태우고서
꺼질 줄 모르는 불빛을 달고 먼곳 어둠을 향합니다.
시를 날리며, 한밤의 전철은
보석이 가득한 서쪽 어둠을 향해 조용히 미끄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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