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내가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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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뿌려지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삭막한 제초제의 힘을 이겨내기엔.
하얀 내 꽃은 너무나도 가냘프다네.
그래서 나는 자그마한 몸뚱이로
고운 하얀 꽃을 감싸 안아 돌보네
장마비 같이 쏟아지는 제초제를
온 몸으로 막아 보호해 주고 있네.
따가운 통증이 육신을 엄습해오지만,
나는 결코 괴롭지 않다네
가뭄에 콩 나듯이 맑은 해가 뜨고
고운 이슬이 내릴 때면,
나는 고이 지켜온 그 꽃을
품에서 꺼내어 놓는다네.
그리하면 꽃은 햇빛으로 목욕을 하고
이슬로 밥을 지어먹네
그리곤 힘없이 보이지만, 고귀한 미소를
내게 보내오네.
언젠가 먼 후에 이 꽃은
자신의 마지막 힘으로 열매를 토해 내고,
세상과 결별하겠지
그러면 나는, 그 열매를 화분에 고이 심고,
싹을 틔워서, 내 순수한 후손에게
물려주고, 나 또한 세상과 결별하겠지
그래, 그렇게만 되어 준다면,
내 이 몸 화염에 휩싸여
처절한 최후를 맞이한다더라도
결코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겠네.
너무나도 행복하고, 자랑스럽겠네.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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