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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편의 시
間氷期에 살며 - 1996, 그 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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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氷期에 살며
- 199, 그 해 겨울 -


한 번 물러간 추위는 먼 산 위에다 진을 칠뿐 내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빙하의 시편처럼 살아남은 행인들은 길을 걷다 모
처럼 맞은 햇살 세례로 적이 부풀어 오른 다리통을 꼬집으며 신기해
하곤 했다 인편으로 부친 편지에는 더러 물러간 추위의 지독했음과
오늘의 무료함을 타박하는 양이 역력했다 툰드라, 몇 몇 지역은 추
위가 물러나며 성깔을 부린양 얼음부스러기를 흩뿌려 작은 규모의
싸움이 있기도 했지만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이끼가 먹어 들어가 이
내 초원을 만들어 버렸다 추위와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라고 장담
하는 부류도 있었다 모두가 그 혹독한 빙하기가 멀리갔음을 믿고 싶
어하는 눈치였다 조심조심 새순을 틔우며 수림으로 빽빽할 꿈에 부
푼 나무들도 온온한 바람결에 소식을 실어 보냈다 얼었던 몸이 녹듯
마음도 녹녹해지자 곧 말의 잔치가 풍성했다 오고가는 말의 갈피는
대개 만년설의 유예기간에 관한 것들로 그 끝 매듭은 늘상 내내 산
위에서 녹아내리지 안으리라는 믿음이 앞섰다 눈싸움에 지친 아이들
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 후 얼음덩이 속에 갇혀있던 겨울 철새 한
마리가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올랐다 이따금 산간지방에서는 눈사태
같은 기습도 있었으나 무위에 그칠 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설경에
취하기까지 했다 멀리서 얼음이 풀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추
웠던 기억들도 서서히 눈녹듯 녹아 햇살에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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