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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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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외출

달이 뜨는 시각 그림자도 숨소리 헐떡이며 집으로 온다.
나는 스물 여섯 엄마를 기다리는 아홉 살의 소녀와 놀이터에 앉아 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애처롭다.

기어코 저 길가에 버려진 것들이 모두 바람에 날려가면
먼 발치 화들짝 놀라 시간을 날리는 또다른 바람에
나는 자꾸만 두려움에 잠들어 간다.익숙한 것일수록 자꾸만 두려워 지는
오랜 버릇과 같은 것,
나는 오늘도 밤 늦은 외출을 시작했다.

이미 목숨을 다한 오늘은 다시 만나기 전에
지금, 나를 죄어오는 오늘을 다시 만나기 전에
내일 나를 위해 탈기할 시간을 만나야 한다.

저기 오래전부터 비치고 있는 가로등을 본다.
나를 이 황량한 밤거리로 이끄는 것, 길이 남는다.
터벅 터벅 걸어서 그렇게 어디를 가다보면
가로등 불빛이 춤을 추다 내 어깨에 기댄다.

잠들어 가는 불빛을 업고 돌아오는 길에
술주정하는 두 사람이 싸우고...욕하고...길에 누웠다.
나는 두 사람과 마주한 바닥이고 싶다.
이 밤 혼자만이 서 있는 이 황량한 땅의 주인이고 싶지 않다.

달이 잠드는 시각 누군가에 들킬까 헐떡이며 돌아온다.
소녀는 아홉 엄마를 기다리며 스물 여섯 살의 나와 놀이터에 앉아 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아이는 한숨을 쉬고
참고 있던 가로등마저 오늘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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