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해가 지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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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사람들은 정동진으로 간다.
해가 뜨는 곳으로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 가득 안기 위해

하지만 내 가야할 곳은
해지는 곳

젊음이 무리 지어 야간 열차를 타는 동안
나는 홀로 고잔뜰을 지나 서쪽으로 간다.

들꽃과 풀벌레들이 파묻혀
이제는 고요한 뜰

그들이 내 가슴에서 눈 뜨려는 것을 잠 재우며
걸어가면 조금씩 대지가 기우는 것일까 ?
어떤 힘에 이끌리어 난 땅속으로 내려간다.

흙 내음이 맡아지고 여기 저기 죽은 뼈들이
손을 뻗어 내 바지 자락을 잡아다닌다.

땅 속을 헤메다 간신히 지상에 오르면
멀리 오이도 쪽으로 해는 떨어지고
그 언저리가 붉게 물드는구나.

곤충이 벗어놓은 허물 같은 육신.
작은 바람결에도 날릴 것 같아 마른 풀을 잡으며
난 서쪽으로 자꾸 걸어간다.

그 옛날 소금밭을 지나가고 있는지
아련한 추억들이 떠 오르다 소금에 절여진다

이젠 폐허가 되 버린 소금창고
아무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눈 감으면

컴컴한 소금집 속에 웅크리고 있던 유령들이
퀭한 눈을 뜨고 날 따라 나선다.

아아 지금도 땅 밑으론 협괘열차가 달리고 있는지
멀리 서있던 소루쟁이들이 몸을 떨더니
우르르르 땅이 흔들려 온다.

그 열차를 타고 가버렸는지 내 손을 잡고 걷던
유령도 사라지었다.

이제는 버려진 섬 오이도
달아나려다 허리가 반쯤 끊어진 채 엎드려
울고 있는 섬.

슬픔은 저 혼자 깊어지고
섬의 푸른 머리가 한 없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주막에선 멀리 붉게 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고기를 찾아 먼 바다로 나갔던 갈매기들도 날개가
붉게 물들어 돌아오고

가슴이 붉게 물든 사람들은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다 저녁 이슬을 맞으며 쓸어진다

가도 가도 닿지 못하는 곳이 해지는 곳일까
여기 와서 모든 것들은 다시 한번 버려지고

해만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일이면 정동진에서 떠 오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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